-
우리나라 근대식 항로표지 연혁
-
2013. 3. 23
해양수산부 부활, 해양수산부와 그 소속 기관 직제 제정(해양·수산통합)
-
2011. 10. 5
위성항법시스템(GNSS)의 위기 대응 대체항법시스템(eLoran) 구축계획 수립, 전파 방해 등 위기 발생시 위치 및 시각 정보 제공
-
2008. 2. 29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해양수산부와 건설교통부가 통합, 국토해양부 물류항만실 해사안전정책관실 해양교통시설과로 소속 변경
-
2003. 7. 25
해양수산부령 제25호로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진도항로표지종합관리소 직제 신설, 2011년 10월 1일 진도해양교통시설사무소로 명칭 변경
-
2002. 4. 19
등대박물관 시설 확충 및 재개관
-
1999. 5. 24
항로표지 업무를 해양수산부 안전관리관실 항로표지담당관실 이관, 대산지방해양수산청 위성항법 중앙사무소 개소
-
1998. 7. 31
항로표지기지창 폐지(대통령령 제15850호)
-
1989. 10. 1
광주 · 포항해상무선표지소개관, 로란-C 업무를 미국 국방성으로부터 인수
-
1979. 3. 23
대통령령 제9391호에 의거해 항로표지 업무를 교통부 해운항만청시설국 표지과로 이관, 지방관서는 지방해운항만청 표지과를 둠, 항로표지기지창은 본청 예하에 둠
-
1970. 2. 13
대통령령 제4599호에 의거 항로표지 업무를 교통부 수로국으로 이관, 지방해운국의 표지과를 수로표지과로 개칭, 항로표지기지창은 여수지방해운국 예하에 둠
-
1962. 9. 19
국제항로표지협회(IALA) 가입
-
1961. 12. 6
항로표지법 제정(법률 제811호)
-
1961. 10. 2
교통부 항로표지기지창 직제 신설
-
1947. 2. 1
항로표지 업무를 미군청정 운수부에서 통위부로 이관
-
1946. 3. 29
미군청정 해사부를 운수부 해사국으로 개칭
-
1943. 12
항로표지관리소를 조선총독부 체신국 해사과에서 교통국 해사과로 이관
-
1910. 9
항로표지관리소를 조선총독부 체신국 예하에 둠
-
1910. 3
대한제국 등대국 명칭을 항로표지관리소로 개칭
-
1907. 12
대한제국 등대국 관제를 재무 행정을 담당하던 탁지부 예하에 둠, 최초의 등대표 발행
-
1903. 6. 1
팔미도 등대 점등(4등급·석유백열등), 소월미도 등대, 북장자서 ․ 백암등표 점등
-
1902. 5. 16
소월미도·팔미도등대·북장자서·백암등표 설치 공사 착공
-
1902. 3. 20
인천항에 대한제국해관등대국(등대 건설 업무) 설치
-
1894. 6
대한제국 관제 개편으로 의정부(議政府) 산하 공무아문(工務衙門) 등장국(燈樁局)에서 항구의 등대, 부표(浮漂) 등에 관한 일을 하게됨.
우리 조상들도 삼국시대이후 조선후기까지 횃불, 봉화, 꽹과리, 깃발 등을 이용하여 선박항해의 지표로 삼았다. 우리나라에서 항로표지가 최초로 나타난 문헌인 세종실록(1422년)에 의하면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 앞 해상 광장목에 지방수령이 향도선을 배치하여 세곡선박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근대식 등대가 도입된 계기는 19세기말 서구열강과 일본이 식민지 획득을 위해 동양으로 진출할 무렵 우리나라는 일본과 병자수호조약(1876년)을 체결하게 된다. 일본과 수교 후 미국을 비롯한 서구열강과도 수교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각 국의 상선과 군함이 들어오면서 이들이 항만시설과 더불어 항로표지시설의 설치를 우리정부에 수차례 요구하게 되었다. 특히 일본은 1858년 7월 29일 미일수호통상조약과 같은 수법으로 1883년 7월 25일 우리정부에 체결을 요구한「조일통상장정」에「조선 정부에서는 앞으로 각 통상 항구의 구내를 수축하고, 등탑(燈塔)과 부표(浮標)를 건설해야 하며」라는 의무를 명시하고 있었던 바, 청나라와의 전쟁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이었던 것이다.
1895년에 정부관제가 4부 8아문으로 개편되면서『해운 및 항로표지에 관한 사무』를「공무아문 관선과」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일본은 1895년 6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우리나라 연안 30개소에 항로표지 설치를 위한 위치조사와 사업계획서를 수립하고 제출하였다. 이에따라 우리 정부는 1902년 3월 26일 미국 외 7개국에 외교문서로 고시하였으며 1902년 5월 인천항 팔미도·소월미도 등대와 북장자서·백암등표설치공사를 착수하여 1903년 6월 1일 팔미도등대·소월미도등대·북장자서등표·백암등표를 신설 점등하였으니 이것이 우리나라 근대식 항로표지의 효시이다. 그 후 인천항의 부도등대, 여수항의 거문도등대, 울산항의 울기등대, 제주항의 우도등대, 여수항의 거문도등대, 목포항의 칠발도등대 등을 신설 점등하여 일제강점기(1910.8)전까지 유인등대 20기와 무인표지 153기를 설치·운영하였다.
일제강점기 후에는 전국연안의 항로표지가 증가되고 장비의 발달로 석유등에서 아세틸렌가스등을 도입하여 운영하였다. 일본이 대륙진출을 위한 해상물자수송의 필요에 따라 항로표지시설의 확장에 중점을 두었으며, 특히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항로표지시설을 군사시설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항로표지가 국제적 공기로서 인정되고 있었음에도 파괴가 불가피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이후에도 철수하는 일본인에 의해서도 항로표지의 상당수가 파괴되어 전국에 기존 설치된 항로표지중 사용가능한 시설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측은 일본 정부에 대해 한국해안의 항로표지를 8.15이전으로 원상복구를 명하였으나 인천 근해에 미군함정이 겨우 출입할 정도로 가등(假燈)을 설치하고 일본인 등대원을 재배치하였을 따름이었다.
마침내 1945년 12월 26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항로표지업무를 인계받음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손으로 항로표지의 사명을 짊어지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항로표지용품이 도난되는 등 사회적 혼란을 겪게 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1946년6월 15일 해안경비대가 창설되어 국방상 항로표지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1947년 2월 1일 항로표지 업무가 해안경비대로 이관되어 한때 해군에서 관장하였다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더불어 항로표지업무는 그 해 11월 4일 대통령령 제26호에 의거 교통부 해운국으로 재이관되어 우리정부의 투자에 의해 기존에 파괴된 항로표지 복구사업이 추진된다.일체의 표지시설을 인수받은 교통부는 곧 6개소에 전등시설, 2개소에 무신호, 4개소에 등표, 10건의 등대원 관사 및 10척의 보급선 등의 복구공사에 착수하는 동시에 기술자의 단기양성과 당시 보유하고 있던 시설유지에 철저를 기하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6.25동란으로 대부분의 항로표지가 파괴되어 기존 항로표지 복구공사는 수포로 돌아갔다. 항로표지의 기능은 전쟁으로 인한 재앙뿐아니라 광원장치에 필요한 항로표지용품의 구입과 기술자의 부족 등으로 광달거리가 오히려 8.15이전보다도 약화되었다. 이에 교통부는 1953년부터 1960년까지 네차례의 복구계획을 수립하고 기술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 무렵 대형등명기와 전원복구에 중점을 두었으며, 13개소의 유인등대에 발전시설이 갖추어지고, 29개소의 유인등대에 광원이 석유백열등에서 전기등으로 전환되었다. 1961년 이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고 선박의 증가와 더불어 항로표지시설의 증설 및 개량에도 역점을 두어 수행한 결과 1960년에 항로표지기수가 254기에서 1969년 418기로 증설되었다. 항로표지기지창의 설치는 1961년 10월 2일에 교통부 소속으로 독립적인 명칭이 최초로 불려지게 되었으며, 1962년1월 6일 교통부장관 직속으로 독자적인 항로표지시설을 위한 각종 표지기기를 제작하게 되었다. 장비의 개량 및 장비가 전자화됨에 따라 항로표지시설도 전자기기로 점차 변모해 갔다. 1970년대 이후 첨단과학이 발달됨에 따라 광원이 전기식 등명기로 교체되고, 1976년 3월 13일 해운항만청이 발족되면서 항로표지시설의 개량에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 1988년 송신국에서 전파를 발사하여 자신의 위치를 측정할 수 있는 장거리무선항법시스템인 로란-C가 도입되었다.
1992년 등명기, 무신호, 전원 공급장치 등 등대에 설치된 항로표지시설의 동작상태를 컴퓨터로 원격조정 및 감시하기 위한 현대화된 자동원격감시·제어장치가 격렬비도등대에 처음 도입된 이후 낙도오지의 유인등대를 무인원격으로 조정하는 곳이 늘어났다. 1996년 8월 8일 해양수산부가 발족되어 항로표지를 관리하면서 선진항로표지 국가로 발전하는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정밀한 위치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위성항법보정시스템(DGPS)이 1999년 8월에 도입되어 서해안 팔미도등대를 시작으로 2002년 10월 동·남해안 주요 등대 11개소에 설치 운영하고 있다. 또한 2000년 10월 25일에 항로표지측정선이 건조되어 항로표지 서비스제공을 위한 정보수집 및 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항만외 연안에서 항행안전과 연관된 항로표지관리·운영등 해양교통정보가 필요한 이용자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항로표지집약관리시스템, 조류가 강한 해역의 조류정보를 실시간으로 항해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조류신호소, 국지적인 해양의 기상과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기상신호표지를 IT기술에 접목한 항로표지종합관리정보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해상교통안전시설의 통합관리 및 통항 선박에 대한 동정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감시함으로써 해난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해양종사자들의 재산과 인명보호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 해상물동량의 증가와 선박의 대형화, 쾌속화 등으로 해상교통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해난사고 예방과 선박의 안전운항에 기여할 최첨단장비를 갖춘 항로표지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이다. 또한, 역사적 보존 가치가 있는 등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해양 친수문화공간의 전진기지로 활용하고 있으며 일반인에게 해양사상을 고취시키고 등대의 해양문화체험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2000년부터 전국 주요 유인등대 3개소에 개방숙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시대적 변천으로 인해 사라져가는 항로표지용품들을 영구히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 주고, 해상교통안전의 중요성과 바다사랑 정신을 함양시키고자 1985년 2월 7일 경북 포항 호미곶에 우리나라 유일의 등대박물관을 개관하였다. 등대 100년의 역사를 맞이하면서 유물전시를 통한 해양문화체험, 항로표지 역사 보존과 발전연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1996년부터 제2전시관과 부대시설 및 전시물 보완을 위한 확충사업을 추진하고 2002년 4월 19일 등대박물관을 재 개관하게 되었다.
-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셨습니까?